Professor column
다음은 사이언스타임즈 2006-11-28 기사입니다.
“기술 없어 장사 못하는 기업, 없습니다!”
서울대 벤처 1호 박희재 사장, 산학협력을 강조
“기술은 대학이, 시장은 기업이 맡는 것”
“기술 없어 장사 못한다고요? 그건 순 거짓말입니다. 기술은 무지하게 많습니다. 사방에 널리 깔려 있는 게 기술입니다. 소위 신기술이라는 거 말입니다. 문제는 팔지 못하는 겁니다. 훌륭한 기술은 넘치죠. 그러나 기술로 만든 제품을 팔 방법이 없는 거죠. 기술보다 중요한 건 마케팅입니다.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기술은 아무리 훌륭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박희재 서울대 교수. 서울대 실험실 1호 벤처 사업가로 에스엔유프리시전 대표이사. 벤처기업가의 모델이자 존경 받는 경영인. 산업자원부와 교육인적자원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공과대학 혁신포럼 2006’에 기조 강연자로 나온 그는 세련된 매너로 강의를 마친 다른 강연자들과 아주 달랐다.
그는 강연장이 떠나갈 듯한 큰 목소리로 “기술 없어 장사 못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얼굴 좀 보고싶습니다. 그런 사람 있으면 저 좀 소개해 주시죠”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마이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시원시원하고 쨍쨍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방청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채 강연시간 40분 내내 계속됐다.
이제 ‘박 교수’보다 ‘박 사장’으로 더 통하는 박 대표는 느닷없이 중국 전한(前漢) 시대 백전의 노장 조충국(趙忠國)이 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고사를 꺼냈다. 대대로 한학 집안이라고 자랑한 그는 이 고사를 다시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 一行)’으로 연결시켰다. ‘백번 보는 것도 한 번의 행동보다 못하다’는 뜻이다.
박 대표는 다시 이 고사를 인용해 ‘백행불여일주(百行不如一注)’라는 말을 만들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백가지 행동도 하나의 주문보다 못하다’라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여기에 그가 ‘공과대학혁신 포럼’을 통해 산학협력에 대해 강조하고 싶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박 대표 강연의 핵심이다.
“세일즈는 내가 다해”
“파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물건을 팔려고 여기저기 뛰어 다녔습니다(行). 그런데 뛰어다니면 뭐합니까? 팔리고 주문이 있어야 돈이 들어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회사가 살고 종업원들한테 월급도 줄 수 있는 거죠. 팔리지(注) 않으면 모든 게 허사입니다. 훌륭한 기술이 있으면 뭐합니까?”
강연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감으로 가득찬 박 대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기술이 좋은 것 같아서 회사만 차리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죠. ‘서울대학교’라는 힘을 빌어 여기저기 찾아 다니면서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에 있는 교수님들한테도 ‘사 달라’며 세일을 했습니다. 저는 훌륭한 기술을 개발한 연구가도, 폼 재는 아카데미의 대학교수도 아니었습니다. 팔아야 산다는 일념의 철두철미한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저희 회사가 지금 궤도에 오른 것은 발로 뛰어 다니며 세일을 한 덕분이지 훌륭한 기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박 대표가 개발한 기술은 훌륭한 기술이다. TFT-LCD 공정용 광학측정장비 기술이다. TFT-LCD 패널 공정상 수율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비접촉식 3차원 나노형상측정장비(PSIS)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장비는 LCD 패널 제조시 불량률을 크게 낮추어 원가절감에 기여할 수 있다.
“처음 회사를 설립했을 때 직원 모두가 연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이 세일즈에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저 순수하게 연구에만 매달려 온 사람들입니다. 자랑 같지만 장비를 파는 영업은 100% 제가 다 했습니다. 사장인 제가 장사를 다 한 거죠. 제가 뛰어 다니지 않고서는 회사가 운영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존경 받으면서 교수직에 머무를 걸 왜 이런 선택을 했느냐며 후회한 적도 많았습니다.”
박 대표의 중요한 메시지다. “기술은 세일즈로 연결되고 시장으로 연결돼야 합니다. 거기에 기업이 필요한 겁니다. 대학은 공부하고 연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술을 개발하는 곳이죠. 대학의 기술을 시장으로 연결하는 기술은 기업의 독특한 기술입니다. 그래서 산학협력이 중요한 거고 오늘 이러한 포럼도 열린 것 아니겠습니까?”
“세무서장 표창장이 가장 중요한 상장”
그의 주장은 산학협력을 활성화시키라는 이야기다. 대학은 기술을 개발하는 거고 기업은 그 기술을 상용화시켜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대학의 기술이 시장에서 팔리려면 기업이 필요하다. 마케팅은 대학이 아니라 기업의 몫이다. 그래서 산학협력이 필요하다. 서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기업의 윤리에 대해 한 소리를 했다. “저는 아주 많은 표창장이 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 가운데 저는 관악구 세무서장이 준 ‘납세 성실자’ 표창장을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지난해에 100억원의 세금을 정말 성실히 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장사를 더 잘해 돈을 벌어 세금을 더 많이 낼 생각입니다. 그 세금으로 불우하고 못사는 이웃이 도움을 받는다면 보람 있는 일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주장은 ‘百行不如一注’다. 그래서 산학협력이 필요한 거고 공과대학의 혁신도 필요하다는 거다. 그리고 덧붙여서 기업가는 돈을 벌면 세금도 성실히 잘 내고 이익을 사회에 돌려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기업인이 사는 것은 소비자 때문이다. 소비자는 국민이다. 동시통역으로 이루어진 그의 강연을 듣고 있던 일본 도쿄공업대학(東京工業大學) 기술이전센터의 아이카겐이치(秋鹿硏一) 소장도 많이 웃었다.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