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or column
실로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다음은 사이언스타임즈의 우리 학교 이흔 교수님 인터뷰 기사입니다.
하시는 연구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그 분의 창의성과 교육철학에 존경을 표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흔교수님이 하신 말씀을 깊이 되새기시기 바랍니다.
윤준보.
말괄량이 수소 원자 길들이기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흔 교수 인터뷰 2008년 08월 14일(목)
▲ 나노 공간의 방에 갇힌 수소 원자의 모형
사람들의 관심이 수소에 쏠리고 있다. 수소가 종말을 향해 치닫는 석유를 대신할 대체에너지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채굴되는 양에 비해서 소비되는 양이 엄청난 석유는 이제 지구촌의 주 에너지원으로서의 자격을 점차 잃고 있다.
석유 위기는 필연적으로 대체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다크호스로 수소가 부상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수소에 관한 논문은 학계를 넘어서 일반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KAIST 생명화학공학과의 이흔 교수(56)는 얼마 전에 사이언스 에디터들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논문들 중에 사이언스지의 편집자들은 왜 이흔 교수의 논문을 추천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지구의 미래를 대체할지도 모를 수소에 대한 비밀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이흔 교수 연구팀은 서강대 강영수(46) 교수팀과 공동으로 얼음 입자 내에 나노 스케일의 공간을 만들어 수소 원자를 저장할 수 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에 보냈고 지난달 11일 사이언스誌는 이를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에 선정, 리서치 하이라이트(Research Hilight)란에 실었다.
홀로서기를 거부하는 수소의 성질
▲ 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흔 교수
원자번호 1번이자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는 특수한 방법으로 산소와 연소시키면 약 3,400℃ 이상의 온도까지 낼 수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흔해 에너지원으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반면에 분자상태를 고집하는 수소는 과학자들이 아직도 밝혀야 할 비밀이 많아 에너지원의 왕좌에 오르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는 원소다.
화학자로서 오랫동안 수소를 연구해온 이흔 교수는 수소의 전문가다.
“우리가 보통 수소라고 하면 수소의 분자상태를 말한다. 이 수소분자도 저장은 매우 힘들다. 이를 어느 용기에 저장하려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한 구멍을 통해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가정의 연료로 쓰이는 프로판이나 메탄과 같은 물질들은 분자가 크기 때문에 저장이 쉽지만 수소분자는 너무 작아서 저장이 어려운 것이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기존의 분자상태를 다루는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반복됐을 뿐이다. 이 교수 연구팀도 2005년 4월 7일자 네이처에 ‘얼음 형태의 입자 내로 수소저장’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냈지만 여기서의 수소저장은 분자상태를 의미했다.
무언가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이 교수팀은 “오로지 분자상태로만 있으려는 수소를 다르게 변형하면 저장과 관련해 새로운 이론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쏠렸다.
“지 금까지 40년 동안 수소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됐지만 이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수소분자 자체도 매우 작아서 용기에 저장할 수 없는데 하물며 그것을 원자로 쪼개기도 어렵고 더욱 작아진 수소 원자를 저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 세계 과학자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탐험가처럼 미지의 작은 세계에 도전하면서 때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 교수팀은 남들이 불가능하다는데 도전을 했고 결국 성공에 이르렀다.
상식 뒤집는 연구 끝에 밝혀낸 비밀
이 교수 연구팀의 지난 3년 동안의 연구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수소분자를 쪼개서 수소를 원자 상태로 만들고 이를 저장하는 일이었다.
“자연계에서 수소는 원자 상태론 존재하지 않고 분자 상태로 있으려 한다. 수소 원자는 매우 불안정해 분리시켜도 금방 다른 수소원자와 결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응성이 큰 수소 원자는 홀로 존재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우선, 수소분자를 원자 단위로 분리시키는 일이 급선무이었다.
“우리 연구팀은 수소가스를 얼 음속에 저장시켜서 아주 차가운 용기에 담아서 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에 가져갔다. 여기서 고에너지의 감마선을 쪼여서 수소를 원자로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 것은 실로 놀라운 발견이자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숙제를 푼 결과이었다. 얼음 스스로 밀폐된 나노 공간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이 교수 팀은 ‘테트라하이드로휴’라는 값싼 용매를 불순물로 사용, 얼음 입자 내에 ‘얼음결정촉진분자“라는 나노 공간의 방을 만들었다. 그 결과, 말괄량이 수소 원자는 나노 스케일의 이 작고도 조용한 방에 가둘 수 있었다.
“고에너지의 감마선을 조사해 수소분자의 강한 결합력을 끊어 수소를 원자 상태로 만들었더니 수소 원자가 오각형의 얼음 입자내의 나노 공간에 조용히 갇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원자끼리 서로 반응하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 안주하고 있었는데 이 오각형 모양의 나노 공간은 신비하게도 수소 원자를 가두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사이언스지에선 이 교수팀의 연구결과를 매우 독창적으로 보았고 그 비중을 감안해 ‘리서치 하이라이트’ 부분에 소개한 것이다.
“이 연구는 과학의 시발점으로 수소 분자를 원자로 만들어 새로운 저장 능력을 밝혀낸 것이다. 원자가 매우 불안정해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실제론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얼음 입자의 방이 반응기와 같이 수소 원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 연구는 우연하게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 평소에 창의적 연구를 중시하는 이 교수의 평소의 연구철학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나 는 대학원생이 들어와도 처음 3년 동안은 절대로 연구결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반대로 학생이 너무나 예측 가능한 실험데이터를 내게 가져오면 쓰레기통에 바로 집어넣어버린다. 그것은 아무 의미 없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가 안 나와서 학생이 낙망할 때, 이때가 창의성의 출발점이라고 가르친다.”
이 결과가 당장에 수소를 자동차의 연료로 쓸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과 강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수와 같은 과학자의 뇌리에서 다시 한 번 창의성이 번득일 때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수소자동차를 타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조행만 기자 | chohang2@empal.com
저작권자 2008.08.1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