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essor column
서남표 총장 ‘結者解之’의 자세를…
[대덕단상]KAIST 사실상의 ‘뇌사상태’…앞날 불투명
‘자진사퇴’로 명예도 살리고 학교도 살려야
입력 : 20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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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우리나라로서는 아주 의미 깊고 중요한 해이다. 황량한 모래 벌판에서 공업화를 시작해 세계적 공업국가로 도약한, 공업화 반세기가 되는 해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역군과 과학자가 큰 역할을 했고, 그 밑바탕에는 애국심이 큰 동력이 됐다.
공업화를 통해 우리가 잘 살게 되면서 다가올 반세기는 우리가 인류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과학에 주어진 역할은 더 커질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올해는 21세기 우리의 장래를 결정할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있다. 현재 정치권에 민심에 기반한 거센 정풍 운동이 일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다가가는 긍정적 신호로 여겨진다. 나라가 투명해지고 건강해질 수록 과학에 대한 기대와 투자, 역할이 더 커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한마디로 과학계는 2012년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해 중지를 모으고 활기차게 움직여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누가 뭐래도 한국과학기술의 중심지는 대덕연구개발특구이고, 그 가운데 중심적 역할을 해야하는 기관 가운데 하나가 KAIST이다. 그 KAIST가 시대의 흐름을 리드하지는 못할 지언정 작금의 현실은 뒤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KAIST의 현재 가장 큰 이슈는 과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리다툼’이다. 총장과 주변의 몇 사람들이 보직이란 고지를 점하고, 사방에서의 온갖 공세에 백병전을 벌이며 버티는 상황이다. 대의명분도 없고 응원군도 올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오로지 총장으로 선출됐다는 기득권만을 강조하며 시간끌기만 하는.
총장측에서 내세우는 논리 가운데 하나는 중간에 나가게 되면 카이스트에 좋은 인물이 안오는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것이란 내용이다. 하지만 전직 총장인 러플린의 경우에서 보듯이 아무리 우수한 세계적 석학이 와도 내부 구성원들과의 소통이 안되면 계획이 좋아도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입증됐다. 서남표 총장의 경우는 재확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우수한 사람보다도 내부와 잘 호흡하며, 조직이 가진 잠재력과 역량을 하나로 모아갈 사람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어느 정도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될 때가 됐다. 자부심을 갖고 이제는 한국형 과학 발전 모형을 모색해도 괜찮지 않나 싶다. 그런 점에서 총장측이 내세우는 세계적 석학이 오지 않을 것이란 논리는 자기변명이고 기우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신년사가 ‘단결과 협력’…세계 과학 흐름은 먼나라 이야기
올해들어 세계 과학계는 그래핀이란 신물질의 실용화와 컴퓨터와 인간의 접합이란 새로운 추세, 호모 헌드레드 시대를 맞이한 인류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등등의 새로운 화두를 놓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KAIST의 지금 모습은 어떠한가? 서남표 총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것은 ‘단결과 협력’이다. 세계 과학계의 조류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본인으로부터 빚어진 분열을 외면하고 단결과 협력을 강조하는 현실을 국민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서 총장이 비록 타의지만 본인 입으로 사퇴 이야기를 거론한 것은 지난해 10월 중순이다. 적절한 시기란 단서 조항을 달고. 하지만 그 이후에 사퇴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없다. 서 총장은 2010년 연임이 거론되던 시기부터 소통이 문제가 됐고, 그 이후로 ‘난제’를 해결 못하고 있다.
지난 연말 무렵에 서 총장을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받은 인상 가운데 하나는 이 분이 우수한 과학자로 본인이 장을 맡고 있는 KAIST란 기관에 대한 애정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KAIST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애정은 부족하구나 하는 점이었다. 한국 과학계를 아우르며 KAIST를 이끌고 세계에 기여하겠다는 비전을 찾기가 어려웠다. 주변에 인의 장벽에 쌓여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서 총장이 업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온라인 전기자통차와 모바일 하버, 거기에 교수들의 철밥통을 깬 것과 성적 불량자 수업료 부과, 전면적 영어 수업이다. 앞의 두 개는 발명 수준 차원이고 그것은 과학자의 업적으로는 감안이 돼도 총장의 업적으로는 의구심이 든다. 이 두 가지에 올인한 댓가로 그 시기에 광풍처럼 몰아닥친 스마트폰 등 모바일 혁명에 카이스트는 두 손 놓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명백한 과실에 해당된다고도 볼 수 있다. 교무 관련 제도 개혁은 우리나라 대학계의 오랜 병폐에 변화의 자극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이런 성과를 나름 인정했기에 논란이 있었음에도 국가는 연임을 시켜주었다. 그러나 그 이후 KAIST는 변화 무풍 지대가 됐다. 총장은 변화를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나 동조하는 사람들이 없으면서 변화의 바람은 사라졌다. 이유를 남탓으로 할 수 있으나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다. 변화의 동력이 사라진 가운데 오로지 남은 것은 현직에 연연하는 안타까운 모습 뿐이다.
일부 교수는 이를 학교의 ‘뇌사상태’라고도 표현한다. KAIST는 이전에도 한 번의 뇌사상태가 있었다. 90년대 후반 노조가 총장실을 점거하고 실험실과 도서관 등에 난방 등을 공급하지 않아 학교 기능이 마비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는 직원들이 그랬다면 이제는 총장과 보직자들이 그 상황을 만들고 있다.
◆ 오명 이사장의 서 총장 용퇴 촉구는 만시지탄이나 환영할 일
그런 가운데 최근 오명 이사장이 서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사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사회 원로로서 잘한 일이라고 본다. 서 총장 본인의 뜻이 아무리 높고 고결해도 사람들이 따르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남들은 다 잘못됐다고 하는데 자신만이 옳다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고집을 넘어 아집이고 노욕이다. 이를 끊어주어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오 이사장이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고 본다.
휴브리스(hubris)란 말이 있다. 토인비가 쓴 말이다. 서 총장이 늘상 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본인이 MIT와 NSF에 근무할 때 만인의 반대를 이겨내고 개혁을 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카이스트 개혁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서 총장은 사퇴를 해야한다. 그리하여 카이스트가 새 활력을 찾아야 한다.
◆ 정부, 이제는 KAIST에 총장 선임 등 자율권 주고 책임 물어야
이사회와 정부 당국에도 당부드릴 말이 있다. 차기 KAIST 총장은 KAIST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뽑고 자기 책임을 지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KAIST에서는 자신들이 우리 총장이라고 내세운 전례가 없었다. 늘 해당 부처에서 교수들이 원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을 낙점해주었다. KAIST가 책임의식을 갖고 세상 변화에 대응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주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간곡히 당부한다. KAIST는 정부당국의 산하기관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보배이기 때문이다.
KAIST 교수와 학생들도 자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찾는 것이란 인식을 갖고 학교 운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할 필요가 있다. KAIST는 국민 세금으로 만들었고 운용하며 대한민국 최고 인재들이 공부하고 있다. 제자리를 찾아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 과학자는 물론 국민들의 희망이다.
휴브리스(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토인비는 역사가 창조적 소수에 의해 바뀌어가지만, 일단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는 과거에 일을 성사시킨 자신의 능력이나 방법을 지나치게 믿어 우상화의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보았다. 곧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과신해 자신의 능력 또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해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토인비는 휴브리스로 규정하였다.
이후 휴브리스는 역사 해석학 용어로 그치지 않고, 과거의 성공 경험에 집착해 실패의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뜻이 확대되었다. 쉽게 말해 휴브리스는 자신의 과거 경험이나 능력만을 절대적 진리로 믿고,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야 어떻든, 또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든 상관없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일을 밀어붙이다가 실패하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오만을 일컫는다.
<대덕넷 이석봉 기자> happymate@HelloDD.com
제 개인적으로 참 공감이 가는 글이라 생각해서 올렸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차기 KAIST 총장은 KAIST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뽑고 자기 책임을 지도록 해주기를 바란다.” 부분이 정말 가슴에 와 닿습니다.
윤준보.